부모님의 과도한 잔소리와 지적, 친구가 없는 외로움, 찾지 못한 나의 진로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을 때 정우열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의 영상을 봤다. 영상에선 상황이 바뀌지 않는데 치료가 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나도 심리상담을 받을 때 상황은 중요한 게 아니고 오히려 성장할 기회라고 했다. 그땐 전혀 이해가 안 됐지만 이제는 반은 이해가 간다. 반이라도 이해가 됐었던 내 경험과 생각으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상황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은 조금이라도 편안해질 거다.
1.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
환경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반만 이해가 간 이유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내가 섬세하게 주변의 영향을 잘 받고 타고난 우울감을 가지고 태어나도 주변환경이 나를 수용하고 따뜻한 분위기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따뜻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자란다. 내가 주변의 영향을 덜 받는 둔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면 주변환경이 항상 불안하고 힘들어도 잘 견디며 살아간다. 환경과 타고난 기질이 반반씩 중요하다.
나는 우울감과 공허함을 타고났는데 어렸을 때 집안과 부모님의 분위기가 항상 불안하고 좋지 않았다. 기질과 환경모두 내가 잘못한 건 없는데 인생을 우울하고 불안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게 억울했다. 그래서 환경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나의 억울함을 들어주기보단 네가 잘해야 한다는 식의 말로 들려서 화가 났다. 그래서 함부로 마음이 힘든 사람한테 환경보다 네가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글에서 말하는 이유가 있다.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만히 있어봤자 바뀌는 게 아무 석도 없었다. 보통 힘든 상황은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을 바꿀 수도 없고 나를 힘들게 하는 남을 바꿀 수도 없다. 남 탓만 하며 살아온 시간이 이제는 아쉽다.
물론 순서가 중요하다. 시작부터 내가 바뀌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일단 나의 억울함 등의 감정을 내가 들어주고 남 탓이건 핑계건 나쁜 거라고 참지 말고 다 털어놓아야 한다. 일기장에 쓰던 믿을만한 사람에게 말하건 내 안의 모든 감정을 털어놓고 내가 바뀌려고 노력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먼저 해야 할 순서를 제쳐놓고 바뀌려고 노력하니 바뀌지 않아 좌절한다.
2. 상황은 그대로인데 느낌이 다르다
물컵에 물이 반이나 있네와 반밖에 없다는 진부한 이야기는 하기 싫다. 물이 반밖에 없다고 떼쓰지 말라는 말 같아서 그렇다. 내가 물이 반밖에 없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억압하지 말고 그럴만하다고 나를 이해해줘야 한다. 비합리적이건 부정적이건 내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나를 수용해야 부정적인 감정들이 해소되고 감정이 해소되어야 물이 반이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뭐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라거나 니 생각을 바꾸라는 식의 구시대적인 조언을 하는 사람이나 책이나 매체는 멀리해야 한다. 시간낭비만 할 뿐 마음의 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단 내 안에 드는 생각들을 모두 펼쳐봐야 한다. 그래서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들이 약물치료보다 면담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면담이 경제적으로 어렵다면 일기장에 막 써보고 솔직하게 말해도 아무런 충고 없이 들어줄 친구에게 마음껏 털어놓아야 한다. 그렇게 후련하게 표현하고 나면 같은 상황도 해볼 만하다는 희망과 자신감이 점점 내 마음속에 피어난다. 바로 힘이 강하게 생기고 모든 게 순식간에 바뀌진 않는다. 작은 불씨가 생겼을 때 불길이 더 커질 수 있도록 장작을 넣어야 한다. 면담은 하루이틀로 끝나지 않고 꾸준하게 오랫동안 해야 한다.
3. 위기는 오히려 기회
넘어져본 사람이 일어나는 방법을 안다. 남들보다 뒤처지고 외롭고 마음이 힘든 분들께 일어나는 방법을 선행해 본 소중한 기회라고 위로해주고 싶다. 지금 인생의 위기 없이 행복하고 한 번도 불행한 적 없이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부럽지 않다. 우리는 살면서 언젠가는 위기가 오고 외로워지는 순간이 온다. 나이를 먹으면 자식들이 독립하고 이혼을 할 수도 있고 여러 사정으로 혼자가 되는 순간은 분명히 온다. 호르몬의 변화로 항상 감정기복 없이 살던 사람이 나이를 먹고 우울해지고 공허함을 느낀다. 갱년기가 오기도 하고 정말 힘든 일이나 경험을 하고 나면 아무리 둔하고 마음이 강한 사람도 무너지기 마련이다. 위기가 올 때 먼저 넘어져본 사람은 일어나는 방법을 알고 금방 일어난다. 이미 일어나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넘어지는 게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그러나 넘어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뒤늦게 일어나는 방법을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살면서 한 번도 위기가 찾아온 적이 없는 사람은 다시 일어나려면 자신이 살아온 고정관념과 방식을 바꿔야 하는데 그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위기는 오히려 일어나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 믿을 만한 사람도 없고 직장도 인간관계도 상처받고 더 이상 세상은 좋은 곳이 아니라고 실망하고 좌절해서 힘든 분들이 이 글을 읽고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나를 비난하고 채찍질하기보다 위로하고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래야 결과적으로 만족스럽게 성장하는 나를 발견하게 될 거다. 비난받고 수용받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 나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 속상하다. 이제라도 나를 내가 상담해 주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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